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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 문제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존경받는 위인 TO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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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뛰어난 업적으로
사후에도 칭송받는 사람들을 흔히 위인이라 부르죠.

이들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들이
책으로, 영화로 퍼져나가며 간혹 사생활도 주목을 받곤 하는데
개중에는 우수한 업적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쓰레기 인성으로 뒤늦게 논란이 되는 위인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인성 문제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존경받는 위인 TOP3를 알아보겠습니다.

3위 마하트마 간디

간디는 '인도 독립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국부로서 존경받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무저항 비폭력' 슬로건으로 잘 알려져 있죠.

그러나! 1948년 사망 이래 세계적인 존경심이 뒤따른
마하트마 간디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영국 등 여러 서양권에서는
일찍이 간디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제기되고 있었다는데요.


가장 큰 논란을 자아내는 것은 간디가
생전 지독한 흑인 인종 차별주의자였다는 주장입니다.

간디의 군 복무 기록과 각종 증언,
그리고 그가 20여년 간 생활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직접 쓴 노트 등을 근거로 보면
간디가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 '검둥이'라는
인종차별적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했다는 점,
흑인보다 인도인이 우월하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여러 차례했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에 지난 2018년에는 아프리카 가나 대학에 세워진
간디의 동상을 철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뿐만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는 기간 동안
비타협적 정치인들에게 자행한 사법 ㅅ인 등
여러 ㅌ러 행위에 대해 간디가 비폭력이라는 명목으로
묵인한 사례가 여러 연구를 통해 수차례 지적됐다고 하는데요.

더욱의 인도의 악질적인 계급제도인
카스트제도를 철폐하는데 무관심으로 일관해온 것은 물론 ,
서민보다 부유층과 상위계급에만 호의적이었다는 비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2011년 뉴욕타임스 편집장 출신 작가가 발간한 간디 전기에 따르면
생전 간디가 동성 연인과 지내기 위해 자신의 부인을 버렸고,
심지어 "남녀의 성관계처럼 추한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성애 혐오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실렸습니다.

70대 이후 노년에 접어든 무렵에는
17세 조카딸을 비롯 여러 젊은 여성들과 잠자리를 같이하는 등
성인 군자와도 같은 이미지에 걸맞지 않는
부적절한 사생활을 지속했다는 주장에
전세계의 간디 추종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2위 에디슨

사후 10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발명왕의 대명사로 불리는 토마스 에디슨!

특허를 낸 제품수가 무려 1000개 이상에 달할 만큼
생전 남다른 발명 의욕을 내비친 에디슨은
특히 백열 전구를 개선, 발전시키고 보급화하는 데까지 앞장선,
근대 산업 발전의 핵심 인물로 통합니다.

실제로 위인전을 읽고
존경하는 사람으로 에디슨을 꼽는 아이들도 많은데...


박수를 자아내는 세간의 평판과 달리
그의 인간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합니다.

에디슨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백열 전구는 사실
영국의 전기학자 '조지프 스완'의 발표 논문을 읽고
아이디어를 훔친 것과 다름 없습니다.

그런데 뻔뻔하게도 오히려 스완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절했다고 법원에 고소하는 패기까지...!


또한, 그는 전기 교류 시스템의 위험성을 증명하고자
수많은 동물 실험을 자행한 잔인성도 자랑했는데요.

일례로 리트리버 강아지를 나무 우리에 집어 넣고
결박한 후 다리에 전극을 부착, 차례로 전기 자극을 높여
강아지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험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심지어 만 오천여 명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교류=감전자=위험'이라는 인심을 심고자
같은 방식으로 코끼리를 죽여
교류에 대한 가짜 뉴스를 퍼트린 일화로도 유명하죠.


이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회사에서 직원으로 근무한
미국의 공학기술자 '니콜라 테슬라'에게는 사기까지 서슴지 않았는데요.

당시 사장으로서 직원 테슬라에게
모터와 발전기의 효율을 높이면 주급 53년 치에 달하는
5만 달러의 거액을 지급하겠다고 호언장담,

하지만 테슬라가 설계를 마치자 5만 달러 지급은 농담이었다며
주급을 10달러씩 올려주겠다는 황당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는데요.


에디슨의 갑질(?)에 분노한 테슬라는
이후 자본을 악착같이 모아 회사를 박차고 나왔고
이후 자신의 회사를 설립한 바 있습니다.

게다가 가정은 전혀 돌보지 않는 일중독이었던 터라
첫 번째 부인이 알콜 중독에 시달리다 병사했음에도
장례식에 방문조차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큰 아들은 길거리에서 아사했고,

그나마 잘 자란 나머지 자녀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단지 일주일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힐 정도였다고 하네요.

1위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며
물리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사후 뇌 크기나 모양이 주목을 받을 만큼 압도적인 천재성으로 유명하죠.

그가 발명한 이론을 바탕으로 탄생한 핵무기를 비롯,
여러 발명품들은 국가간 외교 전략을 완전히 뒤바꾸는 등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미처 공개되지 않은 그의 사생활을
자세히 알고나면 배신감마저 들 정도라고 합니다.


그의 충격적인 사생활은
1903년 결혼한 아내 '밀레바 마리치'와 관련이 있는데요.

대학 CC로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은 졸업 후 결혼,
슬하에 자녀도 둘이나 낳으며 행복한 가정 생활을 이어갔으나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친척 누나와 사랑에 빠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급기야 밀레바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자신과 살고 싶다면 세 끼 식사를 제 시간에 방으로 가져올 것,
함께 하는 여행이나 외출은 절대 꿈도 꾸지 말 것,
내가 요청하면 곧바로 눈앞에서 사라질 것 등을 요구하는 조건문에
동의할 것을 종용했다는데요.

아이들을 위해 끝까지 이혼만은 거부했던 밀레바는
결국 아인슈타인의 완강한 요구에 마지 못해 이혼에 동의했고,
이후 친척 누나와 재혼한 뒤 전처도 자식도 버리고 미국으로 망명해
학자로서의 화려한 삶을 이어갔다고 하네요.


반면 아내는 독일에서 가정교사로 근무하며
홀로 두 아들을 키우다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또한, 아인슈타인 전문가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폰 비랴크네스'라는 사람은 자신의 저서에서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작성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요.

그 사람은 버려진 아내 밀레바였습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와 결혼한 지 2년 후에
희대의 저명한 논문들을 여럿 발표한 바 있고,

당시 6일 내내 특허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기에
연구에 몰두한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던 것으로 분석되는데요.

이 밖에도 아인슈타인 최초의 논문에
밀레바의 이름이 함께 기재돼 있었다는 증언이 존재하고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에도 아내와의 공동연구 흔적이 다수 포착됐으나,
어찌된 일인지 최종 논문에만 밀레바의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특히 아인슈타인이 노벨상 상금이었던 한화 약 3억 원의 돈을
이혼 상태였던 밀레바에게 지급했다는 점에서
공동 연구 이력을 감추고자 돈으로 전처의 입을 막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네요.

한편, 인종차별을 '백인들의 질병'으로 비판한 이력과 달리
그가 남긴 일기에서는 중국인들에 대해
"근면하지만 더럽고 우둔하다"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스리랑카인들에 관해서는 "거대한 쓰레기 속에서 살아간다" 고 묘사해
많은 이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긴 바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사생활에 문제가 많았다고 해도
이들이 세운 위대한 업적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생전 주변 사람들에게 상당한 폐를 끼치고도 학자로서, 정치인으로서
타의 모범이 되는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건 그리 타당해 보이진 않는데요.

사업과 연구에서 일군 업적은 업적대로 칭송하고,
논란의 사생활은 사생활대로 비판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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