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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정보

한반도 역대 최악의 홍수 TO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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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최악의 불볕더위가 찾아올거라는 기상청의 예측과는 다르게
현재 한국에 기록적인 장마로 42일 연속 비가 내리면서
안타까운 사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에 이은 폭우까지,
이 비가 빨리 끝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지금의 홍수도 심각한 문제지만
이전 한국에 더 심각했던 홍수들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한반도 역대 최악의 홍수 TOP4>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4위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을축년 대홍수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7월 18일에서 9월 7일,
을축년에 발생한 4차례의 홍수를 말합니다.

집중 호우로 인한 홍수를 극복하기도 전에
바로 비가 연속적으로 쏟아지는 바람에

피해를 수습할 시간도 없어서 더욱 문제가 심각했던 것 같은데요.

한강 유역에서 발생한 사상 최고의 대홍수로 남아있습니다.


이 홍수의 영향으로 잠실섬 주변의 한강 흐름이 바뀌어
한강 본류가 바뀔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7월 11일에 발생한 1차 홍수로 인해 시간당 300~500mm가 쏟아졌고
한반도 중남부 지역의 주요 강들이 대부분 범람했다고 합니다.

1차 홍수의 피해를 수습하기도 전, 7월 16일 두 번째 태풍으로 인해
숭례문이 물에 잠길 정도로 서울 전역이 물바다가 됐고

심지어 송파구에서는 다음해인 1926년,
홍수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이재민들이 비석을 세우기까지 했다는데요.


이후에도 3차, 4차 홍수가 이어졌습니다.
잇따른 홍수로 전국에서 사망자 647명이 발생하고
가옥 7만채가 붕괴, 유실, 침수
됐는데요.

홍수로 인한 피해액만 1억 300만원에 달하였는데
이는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달하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이 때 가장 피해가 심하였던 곳은
한강과 낙동강 유역인 뚝섬, 송파, 잠실리 등이었는데요

이 당시 용산의 철도청 관사는 1층 천장까지 물이 찼고,
용산역의 열차가 물에 잠겼다고 합니다.


당시 수해는 기록적인 폭우가 일차적 원인이었지만
한강변 저지대에 새 택지가 조성된 탓도 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홍수 덕분에 뜻밖의 좋은 소식이 들려온 것도 있습니다.

지층이 쓸려가는 바람에 땅에 파묻혀있던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발견되었고
풍납토성 서벽이 유실되면서 각종 유물이 대거 발견되기도 한 것인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걸 쓸어가버린 홍수로 인해
당시대 사람들의 삶이 더욱 궁핍해졌을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네요.

3위 1987년 금강 대홍수

"1987년 7월 21일, 충남지역의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이내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듯'한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고
3일간 폭우가 이어졌다."

당시 뉴스 기사인데요,

3일간 내린 비의 양은 최대 673mm로
국내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고량을 기록한 집중 폭우였고
당시 폭우는 기상학자들이
800년 빈도의 집중호우라고 분석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 비로 금강의 물줄기가 범람했고
지역에서 사상 최대의 대홍수가 발생했다고 하는데요.

부여와 공주, 서천 등 금강하류 지역 일대가
온통 물줄기에 휩쓸렸다고 합니다.

때문에 충남지역에서 129명의 사망자를 비롯해
모두 500명 가까운 인명피해를 입었고

재산 피해액도 2900억원에 달했다고 하는데요.


금강대홍수 역시 치수 및 방제 대책이 실패한
대표적인 인재로 꼽힙니다.

이전에도 금강하류지역은 호우가 쏟아지면
상습적으로 침수 피해를 입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으로 국가적 차원의 방재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당시 정부가 방재종합대책중장기계획 수립에 나서기도 했다고 합니다.

2위 2000년 쁘라삐룬 집중호우

앞서 말씀드린 홍수들은 장마전선에 의한 것이라면
2000년의 대홍수는 8월 23일 상륙한 태풍 '쁘라삐룬'으로 인한 것입니다.

쁘라삐룬은 태국에서 제출한 태풍의 이름으로
비를 관장하는 신 바루나를 의미하는데요

'비의 신'이라는 뜻답게
한반도에 엄청난 비를 뿌리며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가뜩이나 당시 우리나라는 태풍 '빌리스'의 영향으로
집중호우가 계속되고 있었는데요,
여기에 쁘라삐룬이 더해져 피해가 가중된 것이죠.

이때 군산에서만 하루 645mm의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폭우가 전국으로 확대돼 총 6천 295억 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약 28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북한에서는 42명이 사망했다고 밝혀졌는데요.

보통 한반도를 관통하는 태풍들이
북위 30도를 넘으면서 세력이 약해지는데 반해
쁘라삐룬은 한반도를 다 지날 때까지 전혀 힘을 잃지 않아
피해가 더 커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1위 2002년 태풍 루사

2002년, 한국이 사상 최초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한 역사적인 해인데요.

그 해 여름, 진출의 기쁨이 끝나기도 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8월 31일에 한국에 상륙한 태풍 '루사' 때문인데요,

루사는 말레이시아에 서식하는 사슴이라고 하는데
순한 동물의 이름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최악의 피해를 입힌 태풍의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루사는 "강"의 세력으로 한반도에 상륙한 몇 안되는 태풍 중 하나이며
강한 비구름을 동반한 채 상륙한 후 매우 느린 속도로 지나갔는데요

초속 50미터가 넘는 강풍은 물론
루사로 강릉에만 무려 870.5mm의 물폭탄이 쏟아져
대한민국 일 강수량 1위를 기록하기까지 했습니다.

태풍이 한반도 내륙에 머무른 시간은 도합 약 18시간이나 되어
전국 대부분의 지방, 그중에서도
특히 영동 지방에서 강풍 및 폭우가 장시간 지속되었는데요


역대 태풍 피해액 1위인
5조 1479억 원을 기록하며 전국을 물바다로 만들었고

213명의 사망자, 33명의 실종자, 9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루사로 인해 강릉시 상류의 오봉댐의 물이
한계치를 넘는 바람에 하마타면 댐이 무너지며
강릉 시내가 물 속으로 사라질 뻔하기도 했는데요.

비가 단시간에 워낙 많이 와서
도로의 아스팔트가 벗겨져 쓸려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입힌 피해가 얼마나 극심했던지
이후 루사라는 명칭은 제명되고 누리라는 새 이름으로 대체될 정도였다고 하니
이런 무시무시한 태풍이 다시 오지 않았으면 하네요.

우리나라는 특히 여름에 홍수가 빈번하게 발생하는데요,

자연을 통제할 수는 없으니
철저하게 대비하여 피해를 줄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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