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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정보

조단위로 투자하고도 폭망한 빚의 도시TO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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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잃어버린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 전설을 들어보셨나요?

순금으로 길을 포장하고
온몸에 금가루를 바른 사람들이 산다는 환상의 도시인데요.

환상은 환상일 뿐,
수많은 정복자들이 원정을 강행했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했죠.


‘잃어버린 황금의 도시’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존재합니다.

한때‘꿈의 도시’로 불릴 만큼 잘나갔지만,
마구잡이 투자로 빚더미에 오른 도시인데요,

조 단위 돈을 쏟아부었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 혹은 범죄자 소굴이 돼버렸다고 합니다.

오늘은 <한때 잘나갔는데 막대한 빚지고 파산한 도시 TOP3>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3위 중국 두산현

중국 남부 구이저우성 두산(獨山)현은 인구 36만명의 소도시인데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찻잎을 따고 누에고치를 치며 살아가던
평화로운 농촌마을이었습니다

소박한 삶의 행복을 누리던 두산현의 1인당 GDP는 약 620만원으로,
중국 내에서도 가난한 축에 들었는데요,

이에 현 정부는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며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들어갔습니다.

무려 1년 예산의 40배인 약 6조 8000억원을 쏟아 부었고,
처참히 망해 그 결과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는데요.


당시 46세로 두산현의 당 서기로 부임한 판즈리(潘志立)가 선택한
가난 극복 프로젝트는 2가지였습니다.

‘대학 도시’와 ‘관광 도시’로의 진화였죠.

그 첫발로 2013년 세계 유명 대학 유치를 위해
3450억원을 투자했는데
결과는 직업학교 2곳을 유치하는 데 그쳤습니다.


포기를 모르는 판즈리 정부는
2016년부터 관광 도시 만들기에 총력을 다합니다.

기네스 기록을 노리고
높이 99.9m 목제 호텔 수이쓰러우(水司樓) 건설을 선언한 것
인데요.

공사에는 약 340억원이 들어갔으며
예산이 바닥나자 여기저기 돈을 꾸고 차용증인 지방채를 찍어댔죠.


결과는 불 보듯 뻔했는데요,
현 정부는 꾼 돈의 이자를 갚지 못할 만큼 파산했습니다.

현은 빚더미에 올랐고,
판즈리는 부패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요.

짓다 만 수이쓰러우 호텔은 공사 중단된 상태로 방치돼
‘세상에서 제일 높은 흉가’가 되었습니다.


최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를 통해
두산현의 몰락 과정을 담은 22분짜리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는데요.

“두산현은 400억위안 날려먹는 법 직접 보자! (상)”이라는 제목으로
수이쓰러우의 현재 모습을 공개한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기준 1만3000회 조회수를 기록
했습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이 관련 보도를 쏟아내면서 화제가 되자
두산현은 이전 지도부를 규탄하며
“맹목적인 빚내기와 정치적 공적을 쌓으려는 무분별한 프로젝트,
부실 공사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규정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고 성명을 발표했죠.


하지만, 어째 조만간 중국 내에서
2, 제3의 두산현이 나올 것 같습니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로 경제 타격이 크다는 이유로
지방 정부의 지방채 발행 한도를 높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 없으면 빚을 내라’를 종용하는 정부가
또 다른 ‘폭망 도시’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2위 미국 디트로이트

‘폭망 도시'하면 사실 이 도시를 빼먹을 수 없죠.

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심도시로
누구보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디트로이트입니다.

현재 미국 대표 도시 하면 뉴욕,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워싱턴DC, 로스앤젤레스 등을 꼽지만,
1900년대엔 단연 디트로이트였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몰락의 과정은 처참합니다.


손꼽히는 ‘부자 도시’에서
가로등도 켤 돈도 없는 ‘파산 도시’가 되었기 때문
입니다.

디트로이트는 10년 간 적자를 쌓다가
2013년 20조원의 빚을 갚지 못해 파산 신청에 이르렀는데요.

이는 당시 미국 지자체 역사상 최대 규모 파산이었습니다.
어쩌다가 이 꼴이 난 걸까요?


미국 미시간 주에서 가장 큰 도시 디트로이트는
18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최대 공업 도시로 성장
합니다.

미국의 5대호인 슈피리어·미시간·휴런·이리·온타리오에 둘러싸인
천혜적인 입지 덕분에 수륙교통이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던
18~19세기에 공업기지로 발달하게 된 것인데요.

일거리가 넘쳐나니 자연스레 사람이 몰려들어
1830~1860년 30년간 인구는 6배로 증가
했습니다.


이후 제너럴모터스·포드·크라이슬러 등
3대 자동차회사의 주력공장이 집결하면서
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됐는데요.

항공기·기계 ·화학 공업시설이 고루 발달됐으며
정유소와 조선소도 들어섰습니다.

1900년대까지 미국 경제 발전을 이끈
공업도시 디트로이트는 ‘미국의 자부심’그 자체
였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디트로이트를 ‘민주주의의 무기고’라고 선포했고,
1966년 발행된 <룩> 매거진에서는 ‘모든 미국인의 도시’라 칭했죠.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몰락은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저렴한 값에 괜찮은 기술력을 가진 일본 자동차가 등장하며
미국 자동차 산업은 위축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인건비가 저렴한 제3세계나
미국 남부로 공장이 이전하면서 도시는 엄청난 불황의 늪에 빠졌죠.


1979~1991년 사이 디트로이트는
15만개의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부동산 경기까지 나빠지면서 185만 명이었던 인구는
70만 명으로 줄었고 빈 집이 7만 채
에 이르게 됐죠.

빈 집과 빈 건물이 계속 늘어나 치안 유지는 어렵게 됐고
망한 도시’는 점차 ‘범죄 도시’로 변모합니다.


도시 전체가 슬럼화 되면서 살인 등
강력범죄 발생 비율은 꾸준히 높아져
미국 평균의 5배에 육박하게 되는데요.

디트로이트는 그렇게 미국 역사상 ‘가장 위험한 도시’를 거쳐
2013년 파산 신청을 하며 ‘가장 비참한 도시’로 몰락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파산 신청 1년 5개월 만에 파산 상태 종료를 공식 선언하며
재건의 의지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그중 한 예로 자동차 업계 스타트업을 꾸준히 지원하며
디트로이트 내로 본사를 이전하는 성과를 낸 것인데요.


노력은 꾸준하게 이어져 2019년에는
글로벌 컨설팅 업체 PwC가 선정한
‘다가구 주거지로 추천하는 도시’로 7위에 꼽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 연방수사국(FBI)의 ‘2018 범죄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폭력범죄 발생률은 여전히 미국 내 최고라고 합니다.

디트로이트에 다시 ‘볕들 날’은 아직인 것 같습니다.

 

1위 일본 유바리

세 번째 ‘폭망한 도시’는 일본의 유바리시입니다.

유바리시의 흥망성쇠 역사를 비유하자면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잊혀진 ‘반짝 스타’ 같습니다.

1970년대 탄광도시로 영화를 누렸으나,
탄광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전성기 때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전 재산을 들여
관광도시로 ‘전신 성형’
을 하기에 이르는데요.

막대한 투자금을 들여 조성한 관광단지로도 인기를 끌지 못하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다가
결국 2006년 '일본 최초 파산 선언한 도시’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1970년대, 유바리시는
명실상부 일본 최대의 석탄 생산지였습니다.

전성기 시절 인구는 12만 명이며 영화관도 20개가 넘었죠.

하지만 국가 산업의 중추로 자부했던 탄광은
석유 사용이 본격화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유바리시를 먹여살리던 광산도 폐쇄되었는데요.


유바리는 자구책으로
1970년대부터 “탄광에서 관광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관광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탄광박물관’을 만들고 유원지와 어뮤즈먼트 파크도 건설했죠.

이런 정책은 초기에 실제로 호응이 좋아
연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큰 돈을 들인 관광시설의 인기가 일시적이었던 거죠.

당시 나카다 시장은 시 예산이 ‘빵꾸’가 나고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진 상황에서도
‘로보트 박물관’ 등의 관광시설을 막무가내로 유치
했습니다.

시설을 짓는 데 필요한 돈은 은행과 정부로부터 빌렸는데요.
신용카드 돌려막기처럼 빌린 돈으로 적자 예산을 메꾸며 철저히 숨겼죠.

악순환은 반복되었고 시내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돈 먹는 하마’만 늘어갔습니다.


나카다 시장은 적자를 흑자로 처리하면서
건전한 지자체인 것처럼 포장했고 이런 실상은,
그가 6번이나 시장을 역임하고 사망한 후에야 드러났는데요.
때는 이미 늦은 후였습니다.

파산 당시 재정적자는 500억엔,
자주적으로 재건할 수 없는 수준이었죠.

유바리시는 파산 직후 중앙정부의 관리체제에 놓이며
사실상 지자체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관광시설을 짓는 데 쓴 돈은
꼼짝없이 시민들이 갚아야 합니다.

정부가 책정한 재정 적자해소 예상 시기는 2027년 이고
그때까지 매년 260억 원씩 빚을 갚아야 한다
고 하네요.

중앙 정부가 대신 갚아준 353억엔을 18년 안에 모두 변제하기 위해
세금이 2배 이상, 버스 요금이 4배나 올랐고.
초등학교 6개가 1개로, 중학교 3개가 1개로 통폐합됐습니다.

도서관·시민회관은 문을 닫았고
종합병원도 진료소로 낮춰 민간에 이관해야했습니다.
때문에 주민들의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구원투수는 있습니다.
바로 30살 나이로 최연소 시장에 당선돼 일본을 놀라게 한
스즈키 나오미치 전 유바리 시장이죠.

그는 2011년 통일지방선거에서
전국 최연소 시장으로 뽑힌 후 자신의 급여부터 70% 삭감하고
재선까지 포함해 8년간 줄곧 재정 파탄 상태였던
유바리시를 위한 각종 개혁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파산도시’라는 오명에 가려진 유바리시의 또 다른 이름은
‘일본 최고의 멜론의 원산지’
입니다.

스즈키 나오미치 전 유바리 시장은 이 점에 주목해
재건 의지를 가진 유바리시 멜론 농가와 힘을 합쳐
도시의 재건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2019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지난해 홋카이도 지사로 선출됩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유바라시에게
구원투수 같은 등장이 아닐 수 없겠네요.


도시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활동의 중심’이 되는 장소
입니다.

결국은 사람이 사는 곳을 뜻하는데요.

그러기에 그 흥망성쇠가 사람의 일생을 닮아가기도 하는 거겠죠.

우리가 사는 이 도시만큼은
절대로 실패한 삶을 살지 않도록, 주시하고 경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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