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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정보

한때 노숙인이었다가 대성공한 연예인 TO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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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에게 행복은 거저 주어지는 것으로 보이죠.

하지만 알고보면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힘든 시간을 이겨낸 후 사회적 성공을 거둔 사람이 적지 않은데요.

오늘은 한때 노숙 생활을 해야할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스타 TOP3
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TOP3 최수종

이 배우의 출연작을 모으면
한국 역사가 완성된다고 하죠!

그가 출연만 했다 하면
못 해도 시청률 30%는 보장이 되었을 정도로
이름 자체가 흥행보증 수표인 배우 최수종씨!

그러나 그는 지금의 명성과 달리
데뷔 전 서울역에서 노숙 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최수종씨의 아버지는 청와대 고위직 공무원 출신으로
집안이 아주 부유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둔 뒤
파라과이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일이 번창하자 미국으로 온 가족이 이민을 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열아홉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 사업이 사기를 당해 집이 쫄딱 망하게 되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됩니다.

미국에서의 생활을 견딜 수 없었던 최수종씨는
결국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요.

어머니는 친구 집을 전전하며 지냈고
그는 서울역에서 노숙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가 한동안 방황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서울역 한구석에 쪼그려 자고 있는데 한 노숙인이 큰 호의를 보여주었고
그 호의를 계기로 더이상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마음을 먹고
온갖 일을 했다고 하는데요.

식당, 극장, 공사장 인부까지
지금의 최수종씨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생업을 위해 닥치는 대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뜻밖의 알바에서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데요.
바로 고등학생 과외 알바였습니다.


드디어 그에게도 꽃피는 봄이 오는걸까요?
놀랍게도 그 고등학생의 아버지는
KBS 예능국 국장이었는데요.

최수종씨의 외모를 눈여겨본 국장은
그에게 배우를 제의했고,
그렇게 배우로 데뷔한 작품이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였습니다.

이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50%를
4년간 유지한 전설의 드라마인데요.

그렇게 데뷔 하자마자 대!대!대박!성공을 거둔 최수종씨는
성공한 배우로써의 길을 30년 이상 걸어오고 있습니다.

TOP2 고수

여기 최수종씨와 같이
서울역 노숙동기인 미남배우가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한국의 살아있는 다비드상이라고 불리우며
'고비드', '고수앓이'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배우 고수입니다!

보고만 있어도 심장이 멎어버릴 듯한 귀공자 외모를 가진 그가
사실은 꽃거지?였다는데요.

아마도 고수씨가 노숙을 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10년 고수씨의 형은
SBS E!TV '탁재훈의 스타일-스타Q10'에서
고수씨의 캐스팅 비하인드를 공개했는데요.

어린시절부터 연기자의 꿈을 품고있던 고수씨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는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하다가
결국은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을 하며 지냈는데요.

그러던 어느날,
90년대 댄스그룹 노이즈의 홍종구씨가
고수씨가 머물고 있던 서울역을 지나가게 되었고

홍씨는 노숙인들 틈에서 거부할 수 없는 빛을 보았던건지
지금 대한민국 최고로 거론될 정도의 비주얼인
고수씨를 캐스팅 했다고 합니다.


정말 될놈될인걸까요?
고수씨는 어디에 있든 찾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이후 그는 노이즈 및 여러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다,
박카스 광고를 시작하며 곧이어 배우로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최수종씨에 이어 고수씨까지 서울역 출신이라니
연예계 관계자들은 신인을 발굴하러
당장 서울역을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TOP1 유노윤호

열정의 아이콘, 열정의 인격화
바로 동방신기의 멤버 유노윤호죠.

그는 "사람에게 해로운 해충은 바로 대충"이라는
소신과 철학이 담긴 격언을 남겼습니다.

대충하는 것이 없는 열정맨 유노윤호씨도
데뷔 전 노숙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는 과거 여러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힘들었던 연습생 시절 에피소드를 공개했습니다.

유노윤호씨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향 광주에서 가수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와
SM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두번의 오디션을 치르고 들어간 대형기획사 SM.
그러나 그당시 SM에는 무려 100여명의 연습생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형기획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팀을 꾸려 데뷔할 줄 알았던 유노윤호씨는
당시 정말 막막했었는데요.

어쨌든 대형기획사의 연습생이되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는 꺾이지 않았고,

광주와 서울을 오가는 중딩 유노윤호씨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일절 하지 않았는데요.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이 전혀 없었기에
유노윤호씨는 제설작업, 고기뷔페 서빙 알바를 하며
힘든 연습생 시절을 보냈습니다.


또 그는 몸 하나 뉘일 곳을 찾기 위해
저렴한 찜질방을 찾아다녔지만,

서울은 광주에 비해 찜질방 가격이 비싸
서울역과 공원에서 노숙을 해야만 했다고 하는데요.

반드시 가수가 되어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힘든 노숙 생활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부모님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에게 힘들다는 말을 한번도 한적이 없어서
아버지는 유노윤호씨가 잘 생활하는줄 알았다는데요.


그의 고된 연습생 시절을 알고있던 동창은
유노윤호씨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는데요.

'어느날 윤호에게 전화가 왔는데, 윤호가 울었어요.
너무 힘이 든다며 그렇게 웃음 많고 활발하던 녀석이..
그렇지만 포기한다는 소린 절대 안하더군요..'

3년 반의 연습생 기간,
어렸던 그에겐 정말 힘들었을 시절이었지만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사랑 받는 성공한 스타가 될 수 있던게 아니었을까요?


오늘은 한때 노숙생활을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연예인이 돼 대성공한 스타들을 만나봤는데요.

이 영상을 보고 있는 분들 중
지금이 내 인생의 암흑기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한 세분처럼
자신의 가치를 믿는다면 언젠간 자신을 증명할 시기가
꼭 오게 될 거란 말을 해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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