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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정보

소수가 다수를 이긴 전투들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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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전쟁이 없었던 때는 거의 없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략과 전술을 이용하여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

'소수가 다수를 이긴 전투’에 대해 알아보았다





TOP 10 - 매소성 전투

나당전쟁 중인 675년 음력 9월 29일 매소성에서 벌어진 

전투로, 3만의 통일 신라군이 당나라군 20만을 물리쳤다.

당군의 병력에 관해서는 과거 20만명으로 서술했는데

실제 병력은 대략 4만 전후로 그 수가 상당했음은 분명하다.






TOP 9 - 진포대첩 

고려 말 우왕 6년에 벌어진 대규모 해전으로 

약 100척의 전함으로 왜선 500여척을 격파한 전투다

당시 500여척은 왜구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규모였는데 

최무선이 개발한 화포가 승리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TOP 8 - 안시성 대첩

645년 고구려를 침공한 당의 군대와 2개월을 충돌한 전투로, 

10만 고구려군이 당나라의 50만 대군을 무찔렀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이라 평가받는 당태종과 더불어 

그조차 함락하지 못한 안시성의 위상 또한 역사에 크게 남았다.





TOP 7 - 디우 해전 

포르투갈 함대 12척이 투르크-인도 연합함대 300여척을 박살내며

포트투갈이 인도양 내의 제해권을 얻게 된 전투다.

포르투갈의 함선은 대포의 사정거리, 군함의 크기 등에서 

연합함대보다 월등한 성능과 화력으로 승리를 얻어냈다.






TOP 6 - 겨울전쟁

핀란드와 소련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개전과 종전이

겨울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탓에 이렇게 불린다.

개전 당시 소련군은 무려 54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였지만

자연지형을 이용한 모티전술과 혹한의 날씨 앞에 백기를 들었다.





TOP 5 - 행주대첩

1593년 2월 12일 하루 동안 권율 장군의 3천여명의 병력이 

우키타 히데이에의 3만의 대군세를 무찔렀다.

한산도 대첩, 진주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로

전투 후 권율 장군은 일본군의 시체들을 찢어 나무에 걸어 놓았다고.






TOP 4 - 고지전투

한국 전쟁 당시 경기도 연천군에서 발생한 전투로

김만술 상사 이하 소대원 35명이 중공군 800여명에 맞선 전투다.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는

이 전투로 김만술 상사는 금성태극훈장 및 십자훈장을 수여 받았다






TOP 3 - 칸나에 전투 

기원전 216년에 벌어진 카르타고와 로마군의 결전으로 

로마의 주력군은 거의 전멸해 사령관 한니발 바르카는 전설이 되었다

역사상 가장 완벽한 전투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 전투는 

양익 포위 전술의 전형적인 형태이자 고전으로 취급받는다





TOP 2 - 명량 대첩 

세계 전쟁사에 다시 없을 대역전극으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함대 12척이 왜군 133척을 상대로 승리했다.



이 전투로 일본 수군의 30여척의 전선이 격침 되었고 

최소 3000여 명의 전사자가 나왔다

반면 조선군의 전선은 단 하나도 격침되지 않았고

조선이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 전투가 되었다






TOP 1 - 나바리노 해전

영국, 프랑스, 러시아 연합군이 오스만, 이집트 연합군을 상대로

단 한 척의 배도 침몰하지 않고 완승을 거둔 전투다



4시간 정도 계속된 나바리노 해전에서

연합군은 178명만이 사망했지만

오스만 해군은 8천여명이 넘는 사망자와 60척의 선박이 대파,

나머지는 모두 전투 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세계 대전 이후 현대 세계에서는 

강대국 간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종교, 민족 갈등 등의 문제로 

크고 작은 국지전들이 일어나고 있다

'좋은 전쟁, 나쁜 평화란 있었던 적이 없다'는 말처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하루 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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