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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이슈

괜히 정치 입문했다가 오히려 욕만먹은 연예인 TO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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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인지도와 대중으로부터 얻는 호감의 정도가 
국회의원 선거의 당락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과거부터 유명 연예인 출신으로 
정치계에 입문하는 이들도 꽤 많았는데요.

그러나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연예인이라고 해서 
누구나 촉망받는 정치인이되는 건 아니죠.

오늘은 괜히 정치 입문했다가 오히려 욕만먹은 연예인 TOP3 를 알아보겠습니다.

<이덕화>

터프한 매력과 남자다운 외모로 
1972년 배우 데뷔와 동시에 청춘 스타로 급부상, 
"부탁해요~"라는 시그니처 유행어까지 생성할 만큼 
발군의 진행 실력을 자랑하는 쇼프로 MC로서도 활약한 이덕화.

절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제14대 대통령 故 김영삼으로, 
1992년 대선 홍보를 부탁받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원 유세를 함께 하며 
처음으로 정치계와의 인연이 시작됐는데요.

 


과거 한 영화에서 위엄있는 이미지로 대통령 역할을 맡았던 그였기에 
정치인으로서의 잠재력이 내재돼 있던 걸까요.

이후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천을 받아 도전장을 내밀며 
경기도 광명시 갑 선거구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14대 총선에서 이미 대중적인 인기를 발판삼아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치 활동에 나선 바 있는 연예계 선배 故 이주일은 
그에게 "가오만 살리고 인기에 연연해서 돌아다니면 떨어진다"라고 경고하며, 
"최대한 불쌍해 보이도록 표를 구걸해야 한다"라는 실질적인 지적을 건네기도 했다는데요.

주변인들의 우려와 기대 속에 
결국 1,447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아쉽게 낙선한 이덕화

지금이야 유효 투표의 15% 이상을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을 환급받는 선거법 조항이 있지만, 
당시에는 이런 제도가 없었고 이미 선거 준비와 홍보, 유세 등으로 
엄청난 금액을 투자한 이덕화는 거의 재기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는데요.


결국 대인기피증까지 걸려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하고 
무인도에서 무려 3년간 혼자 칩거했다고 합니다. 

이후 현재의 이덕화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가발 CF 섭외가 들어와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마지못해 승낙하며 재기의 발판이 마련돼 다시 연예계로 복귀할 수 있었죠. 

<신성일>

배우 활동만큼이나 강렬한 정치 활동으로 
젊은 사람들에겐 정치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배우 故 신성일.

60~70년대를 풍미한 최고의 남자 배우로 
잘생긴 외모에 호감형 이미지까지 더해져 
1981년 일찍이 정치계에 입문한 바 있습니다.


당시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서울 마포구, 용산구에 출마했지만 3위로 밀리며 낙선했는데요.

추후 신성일은 패인에 대해 
"법에 따라 예명 신성일이 아닌 본면 강신영으로 나갔는데, 
유권자들이 배우 신성일인지 몰라 표를 주지 않은 것 같다"라고 전하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죠.

 


그렇게 정치가의 꿈을 접는가 싶었지만 2000년, 
이름을 아예 '강신성일'로 개명하는 초강수를 두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대구광역시 동구에 출마, 
마침내 당선의 꿈을 이루게 됐죠.

이름까지 바꿔 도전해 정치에 큰 뜻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나 봅니다. 


2005년 국회의원 활동 당시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광고로비 사건에 연루되며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것인데요.

징역 5년과 추징금 1억8700만 원을 선고받아
2년여 간 실형을 살고 출소한 신성일. 


동료 정치인의 후일담에 따르면 교도소 수감 당시 신성일은 
"국회의원이 되면 영화배우의 인기에 권력의 날개가 하나 더 달리는 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라며 정계 진출을 후회했다고 밝혔다는데요. 

두 번의 선거를 치를 동안 재산도 거의 탕진하고, 
감옥까지 다녀왔으니 후회할 만한 것 같네요. 

<이만기>

국내에서 방송인 강호동 다음으로 유명한 씨름 선수 출신 연예인 이만기 역시 
과거 정치에 입문하려다 흑역사를 쓴 이력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정치인으로서의 포부를 공공연히 드러낸 이만기는 
2000년 처음으로 '한나라당'에 국회의원 공천 신청을 했지만 
현역 의원에게 밀려 떨어졌는데요.

이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며 
본인의 정치색을 확실히 보여준 이만기


하지만 2004년 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아닌 '열린우리당' 의 후보로 출마해 의아함을 자아냈는데요

당시 故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역풍이 불며 초반에는 조금 앞서가나 싶었지만 
막판에 역전당하며 결국 낙선했습니다.

 


게다가 사전에 선거운동을 실시한 정황까지 포착돼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고, 
선거 비용으로 재산의 절반을 날려먹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기까지 했는데요

그러나 정치인을 향한 그의 꿈은 쉽게 꺾이지 않았습니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는 또 정당을 바꿔 
'새누리당' 소속으로 김해시장 예비 후보에 출마한 이만기

하지만 또 한 번 낙선의 쓴맛을 봐야 했는데요. 


게다가 매번 우세한 정당만을 골라 출마한다는 
'철새' 비판에까지 직면해야 했죠.

2016년에도 새누리당 소속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며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와 토론을 펼쳤으나 
수준 미달의 황당한 질문을 하는가 하면,

"빨갱이는 즉시 사살하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리트윗했다 악플을 받는 등 
국회의원으로서는 함량 미달의 행보만 보이다 
정치인으로서도, 연예인으로서도 이미지가 급속도로 떡락한 바 있습니다.

이쯤되면 포기해야 하는 걸 본인도 아는지 
2019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치는 절대 다시 안 한다"라고 혀를 내둘렀다고 하네요.



공수표만 날리고, 서로 싸움을 일삼는 모습으로 
유권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기기도 하는 국회의원들. 

개나소나 다 한다는 게 국회의원이라는 말도 있지만, 
정치에 입문했다 폭망한 이들을 보니 
지역 시민을 대표하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국회의원에 아무나 도전할 수 있는 건 역시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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