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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이슈

나이 많은 재벌 회장님의 첩으로 사는 것을 선택한 여자 연예인 TOP3

일부일처제의 혼인 제도만 법적으로 인정하는 우리나라에서
남편이 정식 아내 외에 다른 여자와 함께 생활하는 건
논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더욱이 간통죄가 존재하던 시절에는
법의 심판까지 받을 수 있었던 엄연한 불법에 해당했죠.

그러나 불과 수십여 년 전만 해도
암암리에 이른바 '첩살이'가 관행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재벌가에서 흔했다는데요,

오늘은 연예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나이 많은 재벌 회장님의 첩으로 사는 것을 선택한 여자 연예인 TOP3
알아보겠습니다.

<서미경>

1972년 당대 여성 연예인들의 등용문으로 화제를 모으던
'미스 롯데'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롯데제과 CF에 출연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배우 서미경.

눈길을 사로잡는 서구적인 외모로
한국의 오드리 햅번이라는 찬사까지 받은 서미경
앞길이 창창한 신예 여배우로 수많은 영화와 광고 등에 출연하면서
최고의 톱스타로 떠올랐는데요.

그러나 1980년 인기가 한창 치솟을 무렵 돌연 은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충격을 안겼죠.

 


예나 지금이나 연예인의 갑작스런 신변 변화는
흉흉한 소문을 만들어내기 마련입니다

당시 서미경의 갑작스런 은퇴에 언론 매체를 중심으로
서미경에게 '스폰서'가 붙어 미국 유학을 밀어준다는
불미스러운 내용의 기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요.

하지만 이는 결국 소문이 아닌 사실로 밝혀지게 됩니다.


1983년 서미경이 당시
일본 유력 가문의 딸인 '시게미쓰 하츠코'와 혼인 관계에 있던
무려 38살 연상의 롯데 회장 故 신격호와의 사이에서 딸 신유미를 출산,
본격적인 첩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인데요,

출산 초반에는 딸 신유미를 여동생으로 호적에 올렸다가
이로부터 5년이 지난 1988년 유전자 검사까지 마친 후
신격호 회장의 호적에 등록하며 엄연히 딸의 존재를 공식화하기에 이르렀죠.


본처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와중에 아이를 낳고,
거기다 사실혼 생활까지 감행한 서미경.

당연히 여론은 좋지 않았고 이런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서미경은 극소수의 지인을 제외하고는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던 지난 2006년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서미경이
롯데 계열사 중 하나인 '유기개발'과 '유원실업'의 실 소유주로 등장하며
세간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는데요,


계열사 소유 뿐만 아니라 수많은 건물을 소유한 점,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도 6.8%로 신격호 일가를 통틀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서미경을 향한 신격호 회장의 애정이 남달랐던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후 2017년 3월에는 신격호가
경영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지며 공동 피고인으로 출석,
무려 35년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첩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가
진짜 사랑인지, 재산 때문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인기 배우로서의 삶을 버리고 불명예스러운 첩의 자리를 선택한 건
보통의 관점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 것 같네요.

 

<김경희>

한국의 재벌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지도를 구축한 인물 하면
현대그룹 故 정주영 회장을 빼놓을 수 없죠.

정주영 역시 여느 재벌 회장들이 그렇듯
첩에 관한 여러 소문과 추측이 끊이질 않았던 인물인데,
40여년 만에 그 실체가 드러나며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라는 반응을 자아낸 배우 김경희와의 관계가 대표적입니다.

1973년 발레 유학을 준비하던 중 재미삼아 본 탤런트 시험에 합격하며
연기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김경희는 당시 우연한 계기로
한 사교모임에 참석했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당시 57살이었던 정주영의 눈에 들었고,
이후 정주영의 적극적인 대시로 혼담까지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주영은 차일피일 결혼식을 미뤘고,
김경희는 뒤늦게서야 정주영이 이미 부인과 자식까지 있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데요,

그러나 사랑이 깊어진 탓인지 관계를 돌이킬 순 없었고,
결국 정주영의 '세컨드'를 자처한 김경희는
연기자 생활을 반대하는 정주영의 권유로 은퇴를 선언,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비록 한국에서의 사업 때문에 정주영이 너무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종종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정주영과 나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딸도 둘이나 낳았다는데요.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회장직에 있음에도
정주영이 미국에 있는 김경희에게 매달 생활비 명목으로 보낸 금액은
단돈 1천 달러.

김경희의 전언에 의하면 당시 미국 생활은
모친의 경제적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정도였고,
거기다 1992년에는 정주영이 대통령 선거에까지 출마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사실상 첩이었던 탓에 딸들의 존재도 숨기고 살았는데
대선 출마까지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김경희가 딸들의 호적 문제를 제기하니
"대통령만 되면 원하는 것을 모두 해주겠다"
정주영이 딸과 자신의 존재를 공개하는 데 극도로 거부감을 드러냈기 때문이죠

대선 이후에도 정주영의 변호사들의 훼방으로 수년간 정주영을 만나지 못했고,
가족으로서 인정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다
2001년 정주영이 사망하며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두 사람.


김경희는 자신은 몰라도 딸들은 정주영의 호적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지난한 친자 확인 과정을 거쳐 두 딸은
마침내 정주영의 자녀로 법적 인정을 받았고,
이후 재산 상속 소송까지 진행해 수십억 원의 유산도 물려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대가 가족들이 소송 조건 중 하나였던
'가족같은 대우'를 전혀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합의 후
다시 소송을 제기한 김경희는 가족들이 약속을 지킬 때까지
소송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장은영>

앞선 서미경, 신격호의 불륜 관계를
본처 시게미쓰 하츠코가 눈 감아주었던 것과 달리
남편의 뻔뻔한 외도 사실에 직접적으로 분노와 울분을 토로한 여성도 있습니다.

70년대 인기 여성듀엣 그룹 '펄시스터즈'의 멤버 배인순인데요.

1970년대 후반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 결혼한 배인순은
20여년 간의 결혼 생활을 마치고 1998년 이혼했는데,
당시 직접적인 이혼 사유에 대해서는 함구하다가
2003년 에세이집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한잔>을 발간하며
그간 알려져 있지 않은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자신의 이혼 배경에
KBS 아나운서 'J양'이 있었다고 언급한 것
인데요,

배인순은 최원석이 결혼 생활 내내 유명 여배우, 가수들과
거리낌없이 불륜을 저질러 왔으며 비슷한 시기 연예계에 루머로 퍼졌던
'최원석과 아나운서 J양의 관계' 가 애초에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에세이 내용에 따르면 J양에게 완전히 마음을 뺏긴 최원석이
엄청난 기세로 이혼은 요구를 했고,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없어 이혼을 결정했다는 게 골자였죠.


현 부인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첩으로 살며 결혼 생활을 시작한 아나운서 J양은
누가봐도 최원석의 재혼상대인 전 KBS 아나운서 장은영이었는데요

당시 KBS 아나운서로 큰 인기를 끌던 장은영은
퇴사 직후 유부남인 최원석과 프랑스에서
둘만의 언약식을 했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으나
본인이 직접 눈물로 부인하는 바람에 공식적으로 정정보도까지 끝났던 상황.

이 때문에 최원석이 장은영과 재혼할때도
둘 사이를 불륜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배인순의 폭로로 이들의 결혼은 불륜으로 인한 것임이 드러나게 됐죠.


앞서 살펴본 서미경, 김경희는 제대로 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축하도 받지 못하는 말 그대로 첩의 삶을 살아야 했지만
장은영은 그래도 결혼에 성공
,
공식 석상에도 함께 모습을 드러내며
다른 의미의 '대단하다'는 반응을 자아내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28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기는 많이 어려웠던 걸까요?

아나운서로서의 커리어와 도덕성까지 저버린 채 최원석을 선택했던 장은영은
12년 간의 결혼 생활을 이어가다 자녀도 낳지 않은 채
2010년 이혼에 합의하고 말았습니다.


사랑에 나이와 사회적 위치가 무슨 상관이 있겠냐마는
법으로 정하는 혼인 제도를 거슬러 저지르는 불륜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아무리 시대상이 반영된 결과라지만,
세상에 알려진 사례가 이 정도라면
실제 드러나지 않은 불륜 사례는 더 많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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