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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정보

지금 생각해보면 레알 천재인 개그맨 TO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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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만 틀면 나와서 우리를 웃겨주는 개그맨들을 보고 
'천재' 라고 생각하는 일은 자주 있지 않은데요. 

자세히 살펴보면 엄청나게 어린 나이에 
능력을 입증한 천재 수준의 개그맨들이 있다고 합니다 

남들은 아직 사회 초년생이거나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을 나이에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른 천재 개그맨 3명을 알아보겠습니다 

<양세형> 

2003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양세형은 
동안 외모에 특유의 깐족대는 캐릭터가 더해져 
아직도 왠지 신인 느낌이 풍기지만, 

알고보면 2002년 데뷔한 김병만의 1년 후배이자 
유세윤, 장동민보다는 오히려 1년 빨리 데뷔한 고참 개그맨
인데요 

양세형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알린 SBS '웃찾사' 코너 '화상고'에 출연 
당시 고작 21살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난다긴다하는 재능꾼들이 자리한 개그계에서 
양세형의 활약은 단연 눈에 띄는데요. 



화상고 이후에도 웃찾사에서 소소하게 활약하다가 
군복무를 마취고 복귀했으나  
웃찾사가 폐지되며 한동안 자취를 감춘 양세형 

하지만 남다른 재능과 순발력 탓에 종종 게스트로 출연한 
SBS 도전 1000곡에서 장기자랑에 총 9번 도전,  
9번 모두 1등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2011년 첫 방송된 tvN '코미디 빅리그'의 초창기 멤버로 합류,  
비록 시즌1에서는 '옹달샘'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으나 

시즌2부터 이용진, 박규선, 양세찬 등과 함께 재치있는 코너를 선보이며  
'라이또', '양세진', '직업의 정석', '깽스맨' 등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곧 코빅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기 시작
했는데요. 



코빅의 인기에 힘입어 2016년에는 예능이라면 
모두가 바라는 '무한도전' 고정 멤버로 합류,  

먼저 합류해 헤매고 있는 광희와는 달리 
합류 초반부터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센스를 과시하기도 했죠 

이 밖에도 고정으로 출연 중인 '집사부일체'에서는 
단 하루만에 치어리딩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며 
못하는 것 없는 만능 재주꾼의 면모를 자랑한 바 있습니다.  

<노홍철> 

비록 개그맨 출신이 아닌 속칭 '길바닥' 출신이지만,  
2004년 2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Mnet '닥터노의 KIN길거리' 리포터로 
방송가에 데뷔한 노홍철의 등장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
이었습니다. 

멘트를 시종 쉬지 않는 '퀵마우스' 캐릭터에 
독특한 비주얼로 시선을 사로잡으며  
케이블 데뷔 2년 만에 MBC의 주말 간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고정 멤버로 합류, 본격적인 예능인으로서 맹활약하기 시작했죠 



무한도전의 시그니처 포즈로 잘 알려져 있는 손을 모으는 포즈가  
원래는 노홍철의 포즈일 만큼 무한도전 출연 초창기부터 단연 두각을 나타낸 노홍철

2020년 현재 당시 노홍철과 같은 나이인 
28세 예능인으로는 피오, 송민호 등이 있는데  
이들과 비교하기조차 미안할 만큼의 
압도적인 실력과 재능을 뽐내며 무한도전 외에도 

'놀러와', '일밤', '1박2일' 등에도 출연하며 
2000년대 후반 가장 핫한 예능인으로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
했습니다. 



특히 '무한도전'에서는 필터를 거치지 않는 
비정상적인 멘트와 행동으로 한국 예능계 최초 '돌아이' 콘셉트를 구축,  
요즘에는 비교적 흔한 돌아이 콘셉트 연예인의 원조로 통하기도 하는데요 

지치지 않는 에너지와 체력, 
여기에 예능인의 필수 자질이라고 할 수 있는 센스까지 겸비하며  
2014년 '무한도전' 내부에서 진행한 '선택 2014' 특집에서 
유일하게 유재석의 대항마로 유재석과 1대1 진검 승부까지 펼친 노홍철 



그러나 도덕성만은 부족했던 걸까요. 

예능계의 블루칩이자 차세대 국민MC로 촉망받던 2014년 
음주운전으로 불구속 입건되며 활동을 잠정 중단, 

이후 다시 복귀했으나 방송을 너무 오래 쉰 탓인지 
예능감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받으며 
이것 저것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은 하고 있으나 
별다른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유재석> 

천재보다는 노력파의 이미지가 강한 국민MC 유재석. 
하지만 알고보면 유재석도 노력만큼 재능도 뛰어난 개그맨인데요 

1991년 대학을 갓 입학한 스무살의 어린 나이에 
최연소로 KBS 개그맨 공채 7기로 합격한 유재석 


데뷔 직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지난한 무명의 길을 걸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 달리  
1993년 KBS 연예대상 신인상 후보에 오를 만큼 괜찮게 활약했고, 
인지도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비록 당시 동기였던 남희석, 김용만 등이 
워낙 뚜렷한 두각을 나타낸 탓에 그늘에 가려져 있기는 했지만 
소위 말하는 '무명 시절'
 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죠 

유재석 스스로가 밝힌것처럼 신인 시절 개그맨으로서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카메라 울렁증을 앓고 있어  

방송을 망친 것만 수차례에 출연할때마다 임팩트도 거의 없었지만 
사석에서는 웬만한 스타급 개그맨보다 더 웃기다는 평가를 받으며 
예능 PD들에게 계속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고 합니다 



KBS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메뚜기 탈을 쓰고 다니며 
존재감을 다지던 1999년, 마침내 기회를 얻게된 유재석 

당대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KBS '서세원쇼'의 '토크박스'에 출연해 
자신의 친구 '찍새'와의 에피소드를 오직 입으로만 털어내며 
순식간에 인기 스타로 발돋움
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2000년에는 MBC 간판 예능 '목표달성 토요일'의 
'동거동락'의 단독 MC로 발탁돼 국민적인 인기를 얻게 됐고  
현재의 '국민MC'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무명시기가 꽤 길었다는 세간의 오해 때문인지 
늦깍이 스타라는 이미지가 일부 있지만, 
유재석이 '서세원쇼'로 두각을 나타낸 건 고작 27살,  

이후 '동거동락', 'X맨'을 하드캐리하는 MC로 
주목받은 시점도 30대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린 나이에서부터 천재적인 진행 실력
을 뽐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이라면 아직 부모님의 도움을 받거나, 
갓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의 나이에 
코너와 프로그램을 책임져야 하는 인기 예능인의 반열에 오른 세 사람. 

부담감이 엄청날 법도 한데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으로 
오랜 시간 인기 개그맨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을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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